The Way
전라도의 철도 본문
이번에 광주 무등산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갔다 오며 찾아보고 느낀, 전라도의 슬픈 철도 교통 현실에 관한 글이다..
호남선
사실 철도는 아주 위대한 교통수단이다.
KTX가 워낙 빠르기에 무궁화호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감이 있지만, 그 느려 보이는 무궁화호의 속도조차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타고 가는 중에 한번 휴대폰으로 네비게이션을 켜보면, 시속 120km는 거뜬히 찍힌다. 선형이 좋은(=직선) 구간이면 시속 150km까지도 속력을 낸다는데, 이 정도면 고속도로로 가는 웬만한 자동차보다도 빠른 속력이다.
하지만 광주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는데, 그 첫 번째 이유 중 하나는 대전을 들렸다 가는 이 기괴한 경로이다.
멋지게 잘 뚫린 논산천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자동차 경로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이 잘 눈에 들어온다.
천안역에서 논산에 있는 강경역까지를 찍어보면 그 심각성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무궁화호는 125.7km를 가야하지만 자동차는 단 85km로, 무려 40km의 거리차이가 발생한다. 40km면 서울역에서 수원역까지의 거리인데, 단순히 돌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추가되는 거리다.
사실 원래 전라도로 가는 길과 부산으로 가는 길의 분기는 지리적으로 천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 유명한 천안삼거리가 삼거리인 이유도 서울-전라도-경상도 가는 길 3개라서 삼거리이며, 지금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천안 JC에서 논산천안고속도로로 빠지는 차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쭉 가는 차가 나뉘며 차량 수가 많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번외로 저 구간 호남선의 선형이 매우 노답이긴 한데, 이건 일단 넘어가자.
사실 호남선이 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역사를 안다면 납득할 만하다.
호남선은 무려 1914년 일제강점기 시대에 건설된 철도고, 이때 건설 목적은 사실 (일본이) 호남의 곡식들을 부산항으로 나르는 거였다고 한다. 부산으로 가기에는 대전으로 이은 뒤 바로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경로상으로도 매우 합리적이다.
호남고속선
그 후 시대가 많이 변했고, 한국은 서울 공화국이 되며 서울로 가는 수요가 훨씬 넘치게 되었다. 또한 KTX의 발전으로 경부고속선 다음으로 호남고속선을 건설하게 되었는데..
???
대한민국 철도 역사상 가장 기묘하다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호남고속선의 오송 분기가 결정되면서 다시 한번 전라도의 철도 교통은 산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천안과 논산 사이에 있는 공주시에 뭔가 마가 끼었나 싶기도 하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저 결정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되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하지만, 이상한 정치적 이해관계들이 얽히다 보면 가끔 이상한 결정이 나올 때가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2번째 기회였던 호남고속선마저 마치 누군가가 오른쪽으로 잡아당긴 듯, 이상한 경로로 가게 되었다.
물론 KTX라서 기존보다는 훨씬 빠르긴 하다만, 오송역 분기로 결정됨으로써 천안아산역 분기되도록 결정됐을 때보다 시간이 왕복 20여 분 더 걸리는 기적의 효과가 나타났다.
오송역 분기를 조금만 더 까보자면, 여기서 파생된 두 가지 기적적인 효과가 또 있다.
1) 요금 증가
기차는 정직하게 이동거리 km당 요금을 매긴다. 예컨대 무궁화호는 km당 65원이라는 저렴한 요금 제도를 가지고 있다.
만약 위에서 말한, 천안역~경강역을 대전을 안 들리고 직선으로 잇는 선로가 있다면, 이동거리 40km가 줄면서 요금이 2600원 더 저렴해질 것이다..!
오송역 분기로 결정되며, 전라도에서 올라갈 때 천안아산역 분기에 비해 19km 정도 더 긴 이동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KTX 요금은 km당 164.41원이기에 (단, 이용하는 선로가 고속선인지, 준고속선인지, 일반선인지에 따라 상이함), 요금은 편도 기준 2900원 오르게 되었다. 전라도에서 KTX를 타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결정 때문에 왕복 5800원씩 더 내고 있었던 것 (돈을 더 내면서 시간도 더 걸리는 건 덤이다)
https://news.ikbc.co.kr/article/view/kbc201910070001
이렇게 더 낸 요금이 2019년 기준으로 6,235억 원이라고 한다. 2024년인 지금은 아마 1조 원도 훌쩍 넘었을 듯하다.
2) 안타까운 공주역...
오송역을 지나게 결정되면서 공주역이 공주시내보다 한참 밑에 떨어진 아래쪽에나 생기게 되었다. 고속열차가 아무리 잘 꺾어도 90도 우회전을 할 수는 없으니.. 공주 시내를 통과하는 건 오송 분기가 결정된 시점에서 이미 물건너간 것이다.
무려 공주 시내에서 15km나 떨어진(그것도 남쪽으로) 곳에 역시 설치되면서 공주시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수요 개박살난 역이 되어버렸다
결국 호남 지방에서 철도는 아직까지 그렇게 주류가 되지 못하고, 버스에 밀리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호남고속선을 직선화시키면 안될까?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9229&sc_section_code=S1N6
이런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제는 돌이키기 힘든 지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직선화를 한다고 해도 이미 지어진 공주역을 폐쇄시키고 공주 시내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30년쯤 뒤에 세 번째 기회인 고속철도 이상의 교통수단이 (하이퍼루프라거나..) 온다면 그때는 꼭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
맺으며..
한번 잘못 결정된 정책은 수십 년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
지역 이기주의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이익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보면 되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힘든 일이고, 결국 정책결정자들이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에 굴하지 말고 전체적인 편익을 높이기 위해 강단 있게 나가야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일이 잘 되지 않는 게 참 아쉽다.
이런 일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왼쪽은 최근 짓고 있는 동탄-인덕원선의 흥덕역인데, 자기 집 앞 들려달라고 하면서 동탄에서 서울 방향으로 갈 수많은 사람들을 다 5분씩 더 걸리도록 만들어버렸다.
우측은 아까 말이 많았던 호남고속철도가 아래쪽으로 목포까지 이어지는 2단계 구간인데, 이번에는 또 무안공항역을 만든다고 빙 돌아가게 생겼다. 이러면 결국 또 목포 철도 수요가 박살난다.
철도 같은, 국가의 기반시설을 만들 때는 강단 있게, 이상한 요구는 잘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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