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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 명산 100] 주흘산-조령산 연계산행 (2020.08.15) 본문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막 행복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운이 매우 좋았고, 삶의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여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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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영 없다. 모처럼 여유있던 주말을 맞아, 친구와 함께 주흘산-조령산 연계산행을 가보기로 하였다. 주흘산과 조형산은 소백산맥에 속한 산으로, 그 유명한 문경새재를 사이에 두고 좌측은 조령산, 우측은 주흘산이 위치한다.
이 문경새재는 굉장히 의미있는 곳이다. 이를 위해하기 위해선 대한민국 지도를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우리나라의 대표 산맥인 태백 산맥은 알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산맥으로 태백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인 소백 산맥이 있다. 이 소백 산맥은 영남 지방과 호남 지방을 구분하고, 또 충청도와 경상도도 구분한다.
지금이야 KTX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면 터널로 뚝딱 가니까 실감이 잘 안나지만, 소백산맥의 존재는 경상도에서 서울을 가는 데에 매우 큰 장애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동네 뒷산도 아니고, 고도 1000m씩 하는 그런 산들이 몰려있는 곳 말이다.
매번 산 정상을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이런 산맥 중에서 그나마 지나갈 만 한 곳을 찾아야 한다. 보통 이런 곳에는 령이 붙는다. 소백산맥을 통과하여 경상도에서 서울을 올라가기 위해 지나갈 만 한 곳은 크게 3가지로, 조령, 죽령, 추풍령이 있었다. 그 중 뭐 이름이 좋다나.. 암튼 그런 이유로 조령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조령을 지나는 길이 바로 이 문경새재이다.
지도를 보면 양쪽의 높은 산들을 사이로 계곡이 흐르며, 등고선의 높이가 굉장히 낮다. 이 계곡을 쭉 따라가면 제 1관문, 제 2관문, 제 3관문, 수안보를 차례대로 지나며 소백산맥을 뚫고 충주에 도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산맥을 뚫고갈 수 있도록 하는 구세주 같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는 사람들은 가족들이랑 놀러오는 것을 추천한다. 걷기 아주 좋은 길이다.
아무튼, 우리의 목표는 주흘산과 조령산을 가는 것이다.
이게 연계산행이긴 한데 엄청 떨어져있어서 막 쉽지는 않다. 위 지도의 왼쪽 아래에 조령산이 있고, 오른쪽에 주흘산 주봉이 있다. 참고로 저 지도의 가로길이가 6km이다.
우리의 완벽한 계획은 아래와 같이 세워졌다.
친구 한 명은 평택에 살고, 나는 대구에 있기 때문에 먼저 금요일 저녁 늦게 김천역에서 만난 뒤 기차를 타고 점촌역까지 가서 근처에서 1박을 했다.
토요일 아침 점촌시내에서 21번 버스를 타면 (첫차 6:30) 8시쯤에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지도에 표시된 1관문 - 주흘산 주봉 - A지점 - 2관문 - B지점 - 조령산 - 1관문 순으로 산행을 마치면 된다.
계획은 아주 순조로웠다. 먼저 1관문 - 주흘산 주봉이다.
5km의 거리로 꽤 힘든 여정이었지만, 휴식 포함 2시간 정도 걸려서 주흘산 주봉에 도착했다.
주봉에 올라 신나하는 모습이다.
다음 코스는 주흘산 주봉 - A지점 - 2관문이다.
내려갈 때 원래 계획은 영봉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영봉쪽으로 가버렸다...
덕분에 꽤 많은 길을 돌아오게 되었다. 주봉에서 영봉을 들렸다가 2관문까지 가는 총 거리는 6km 정도다.
신나게 가다가 계곡물에 발을 빠뜨렸다... 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불어서 그렇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이제 2관문 - B지점 - 조령산을 올라가는 일이 남아있다.
네이버 지도에도 잘 표시되어 있는 멀쩡한 길이지만, 생각한 것만큼 길이 잘 되어있지 않았다.
계곡을 건너야 한다는 점, 수풀이 무성히 우거져 있다는 점, 물에 젖은 바위를 올라가야 한다는 점 등이 큰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등산로의 표지판이 잘 되어있지 않았고, 대략 절반 이상을 지나왔을 시점에서 원래 등산로에서 떨어져 길을 잃게 되었다.
나무에 산악회들의 리본이 달려있는 것을 믿고 따라왔는데, 그 믿음에 큰 배신을 당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도를 확인해보니 대략 아래와 같은 지점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계속 올라가는 방향으로 200m를 가거나, 오른쪽으로 200m를 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일단 강행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저기 경사가 진짜 말이 안 된다. 계속해서 암벽등반 수준의 바위를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왔고, 잠시라도 정신집중을 안 하면 바로 뒤로 굴러떨어질 정도의 경사였다. 낙엽은 한가득 쌓여서 발이 푹 꺼지거나 쭉 미끄러지는 상황이 많았고, 살기 위해 거의 기어가듯이 해야 했다. 마치 딥스를 하듯이 바위를 계속해서 올라가고, 무성히 우거진 나무를 몸으로 뚫고 올라가서 바위를 붙잡고 쉬는 일이 반복됐다. 중간중간 뱀을 만나곤 했는데, 이는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산 하나를 올라가고 난 후 약간 방전된 체력으로 두 번째 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죽겠다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간 친구가 물을 500ml만 챙겨가서 이미 물이 바닥난 상태였기에, 탈수가 왔는지 정신을 못 차린다.
대략 1시간 반 정도의 사투 끝에 약 200m를 전진해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곳에 도달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물과 바나나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지도를 확인하고 20m 정도를 달려가니 등산로의 나무 데크를 발견했다. 무인도에서 탈출한 로빈슨 크루소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기뻐하며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과 흡사한 포즈를 지으며 떨어지는 빗물을 마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심상치가 않았다. 비는 그렇다 치는데, 낙뢰를 동반한 비였다. 산 능선의 바위에 있다가 낙뢰를 한 대 얻어맞으면 그대로 이승을 하직하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스틱이나 핸드폰 등을 들고 있으면 낙뢰를 얻어맞을 위험성이 더더욱 높다. 우리는 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정말 말 그대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 나의 멘탈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내려가자고 했고, 친구는 내 기억에 올라가자고 했다. 내려가면 이 산을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에 약 10분간 방황했을텐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비가 멎어들어서, 재빨리 조령산을 마저 올라가기로 했다. 체력이 완전방전된 상태여서 재빨리도 아니고, 능선을 따라서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북이 기어가듯 했다. 나뭇잎에 빗물이 맺혀있으면 마시면서 진군했다.
다행히 살아서 정상을 찍었다. 시간은 3시간인데, 운동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이 말은 1시간 30분간 안 움직이거나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쉰 적이 없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던 조령산 정상의 모습..
마지막으로 조령산 - 1관문 코스로 내려오는 일이 남았다.
열심히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뭔.. 지도상에는 분명히 길이 있는데 길은 보이지도 않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그 길로 다시 2관문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힘이 풀리고, 물은 없고, 비는 다시 내리고, 번개는 치고, 바위는 미끄럽고, 그야말로 가관이다.
바위를 만나면 대충 굴러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서 2시간만에 살아서 내려왔다.
내려가면서도 길을 잃을 뻔 했던 것이 레전드
친구가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계곡물을 마신 것도 레전드
내려가다 빡쳐서 스틱을 내던지고 내려가면 당장 택시타고 대구가겠다고 한 것도 레전드다...
이렇게 살아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 여행은 정말 완벽한 여행이었다. 계획도 완벽했고, 또 하나가 날씨인데, 기상청에서는 계속 금, 토, 일 비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절대로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토요일 오전까지는 날씨가 굉장히 맑았다.
우리의 첫 실책은 영봉으로 길을 잘못 든 것이고, 두번째는 조령산을 오르다 길을 잃은 것이다.
우리의 두 개의 실책이 없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조령산을 오르고 거의 다 내려온 시점에서 비를 맞으며, 완벽한 타이밍에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결과 산에서 죽음을 코앞에 뒀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바위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비가 왔으면 진짜로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벼락을 맞지 않은 것도, 뱀에 물리지 않은 것도 모두 감사하다.
어쨌든 이번 여행으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첫째는, 조금 거리가 멀더라도 무조건 등산로는 "가장 좋은 길"로 갈 것.
둘째는, 비가 온 후나 비 예보가 있는 등, 바위가 젖어있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
셋째는, 물과 식량은 항상 풍족하게 챙겨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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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살아서 돌아오고,
문경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문경->충주 버스를 타고 충주에서 1박을 했다.
우리의 기대를 한껏 모은, 컴퓨터 2개가 있는 숙소라 충주 막걸리와 함께 힐링의 시간을 기대했지만 몸이 완전히 방전된 상태라 게임도 30분 정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바로 잤다.
다음 날, 충주댐까지 걸어가서 저번에 못 찍은 인증도장을 찍는 것으로 여행이 마무리됐다.
사실 셋째날에는 탄금대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비내섬, 충주댐 도장을 모두 찍는 것이 목표였지만 우리에게 그만한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조령산은 팻말이 썩 잘 되어있는 편이 전혀 아닌 것 같다. 조령산은 앞으로는 썩 오고싶은 산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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