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블랙야크 명산 100] 한라산 (2019.06.24) 본문

기록/블랙야크 명산 100

[블랙야크 명산 100] 한라산 (2019.06.24)

Jeonggyun 2019. 7. 8. 02:36

뒤늦게 쓰는 등산일기.

 

갑자기 도전이 하고 싶어진 날, 친구와 함께 한국에 살면서 꼭 해봐야 할 4가지 도전 리스트를 만들었다.

1. 블랙야크 명산 100

2. 자전거 국토종주 그랜드슬램

3. 서울 둘레길 완주

4. 마라톤 하프 2시간 내 완주

유산소운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걷기, 등산, 달리기, 자전거가 모두 포함된 아주 잘 만들어진 리스트다.

 

마침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면서,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 종주와 한라산 등산을 한번에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4일간 자전거를 계속 탄 탓인지, 전날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무릎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제주시청 쪽에서 김밥을 산 뒤, 버스를 타고 성판악까지 이동했다. 버스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때가 오전 9시 14분.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1시부터 등산을 통제한다고, 빨리 가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비장한 마음으로 출발. 그런데 50m 정도 올라갔는데, 무릎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일단 무시하고 갔다.

 

 

 

 

 

성판악 코스에는 중간중간 위치번호가 나와있는데, 어느 정도 왔는지를 확인하기에 딱 좋다. 숫자도 꽤 빠르게 올라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기 좋지만, 속지 말자. 4-1에서 시작한 번호는 4-36까지 나온다...

 

조깅하듯이 완만한 경사가 계속 이어져, 1시간 30분 정도를 간 뒤 10분의 휴식을 취했다. 힘들어서 쉰 건 아니고, 무릎이 조금 걱정되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빠르게 돌파한 뒤, 조금 더 가니 나무로 된 길이 나왔다. 사방이 탁 트이고 햇빛이 따스하게 비치는, 성판악 코스의 상징과도 같은 길이다.

 

그런데 정상까지 약 50m를 남겨둔 시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그런지, 무릎에 힘이 아예 들어가지가 않았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돌아갈까 생각을 했지만, 아니 정상이 코앞인데 돌아가는 것이 말이 되나? 기어가기로 결정했다.(...) 한라산 노루남으로 사진이 찍히지 않았기를 빈다 ㅎㅎ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의 날씨는 아주 맑았고, 며칠 전에 내린 비 덕인지 백록담에 물도 차있어서 좋았다. 확실히 정상에 호수가 있는 풍경은 이국적인 면이 있었다. 탁 트인 아름다운 전경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까지 소요 시간은 휴식시간 제외 2시간 52분. 이것도 솔직히 숨 하나도 안 찰 정도로 간거고, 무릎이 조금 덜 아프고 가방에 노트북을 포함한 각종 짐이 없었다면 휴식 포함 2시간 30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같은 허약한 4급이 이정도니, 솔직히 4시간 30분 걸린다는 거는 개뻥이다. 중간에 밥이라도 여유롭게 먹는다면 모를까...

 

아무튼, 경치를 관람하며 아까 사온 김밥으로 정상에서 즐겁게 혼밥을 했다...

혼밥을 마치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내려갈 때 문제가 또 발생했다. 올라나는 것은 무릎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내려가는 것은 진짜로 아팠다. 결국 궁극기인 "한 쪽 무릎 안굽히고 걷기" 자세를 유지하며 내려왔는데, 거의 굼벵이 속도로 내려왔다. 왜 4시간 30분 걸린다는 건지 바로 이해했다.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며, 4시간 30분 정도를 걷다보니 성판악에 다행히 살아서 도착했다. 중간에 어두운 숲 속에서,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까마귀 울음소리만 들릴 때는 정말 무서웠다. 더구나 표지판에는 멧돼지 출몰지역이라고 쓰여있어서 더욱 공포심을 자극했다. 나 한 명 까마귀한테 물려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러웠다. 가능하면 산은 여러 명이서 가자.

 

한라산을 갈 계획이었는데, 왜인지 캠퍼스화 급 신발을 신고와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내려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등산화와 등산 스틱 두가지는 정말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것 같다. 노인이 되서 기어다니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관절 건강에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든 김에 바로 구매해버렸다.

 

이로써 블랙야크 명산 100 챌린지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되었다. 산 100개를 올라간다는 것이 참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아마 30살은 되어야 완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강원도쪽 산을 가려면 차도 필수적일 것 같다.

 

좋은 날씨 덕에 멋진 풍경을 보게 된 것과,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게 된 것에 감사한다.

Comments